Episode 10. 총성.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한 겐가?!”
남자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지금 이 자가 계속해서 이 조선인의 얼굴을 모른다고 하고 있어. 감히 천황 폐하의 군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자에게 마땅한 벌을 준 것인데 뭐가 문제지?”
무리의 대장처럼 보이는 사내가, 삐딱하게 선 채로 손에 쥔 사진을 흔들며 답했다. 눈매가 뱀의 혀처럼 길게 찢어져 있고 입이 삐죽 튀어나와 꼭 닭의 부리와도 같았다. 그는 오른쪽 눈에 낀 회갈색 단안경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졌다.
“그렇지만 기무라, 이건….”
“이봐.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지금 상관은 나고 결정도 내가 한다네. 자네를 믿고 일을 맡겼더니만 오히려 일을 더 벌이고 왔지! 안 그런가? 그 모양이니 나보다 먼저 군에 들어와 놓고 계급은 내 아래이지 않나! 내 말이 틀렸나?”
‘기무라'라고 불린 그 사내는,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고 시커멓게 재가 묻은 검은 색 군복을 털어내었다. 그는 쓰러진 사토고로를 흘깃 쳐다보더니 흙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우리에게 명령이 떨어졌을 때 기억하나? 뭐라고 적혀 있었지?"
"이번 일의 통솔권과 통제권은 조장(曹長) 기무라에게 맡긴다..."
"그래. 소수의 인원들만 데리고 온 이유는 비밀스럽게 일 처리를 하기 위해서지,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은 아니다 이 말이야. 자네가 나한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라고.”
기무라는 끼고 있던 갈색 가죽장갑을 벗고는, 움츠러든 남자의 명치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니까 자네는, 내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군인이란 놈이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전 총성이 만들어낸 비릿한 화약 냄새가 안개에 실려 퍼져나갔다. 기무라는 군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진 담배쌈지를 꺼냈다. 그리고 일개 군인의 것이라기엔 꽤 사치스러운 백동(白銅) 담뱃대를 꺼내들어, 자랑하듯 천천히 담뱃잎을 채워넣고 이내 불을 붙였다. 입안 가득 연기를 머금고선 이내 내뱉더니, 그 맛이 썩 괜찮았는지 입꼬리를 살짝 씰룩거렸다. 그는 한 번 더 연기를 머금고 내뱉은 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이제 알겠다! 총소리 때문에 이곳에서 꽁꽁 숨어있던 사람들이 도망갈까 봐 그러는 겐가~? 걱정하지 말게! 도망쳐도 적당히 몇 놈 쏴버리면 죽기 싫어서라도 얌전히 잡힐테니.”
그렇게 말하며 기무라는 어린아이처럼 킥킥대며 웃었다. 뱀 같은 눈매에 잡힌 주름이 눈웃음에 더욱 두드러지며, 기무라의 얼굴은 기묘하게 늙은이처럼 보였다. 웃음을 멈추고, 그는 다시 한번 담뱃대를 입에 대며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 마을에 남은 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것 말고 달리 내려올 명령도 없었으니. 병사들은 그 신호를 보자마자 그 즉시 소총을 견착한 채 안개를 뚫고 뛰쳐나갔다. 기무라는 문득 생각이 난 듯, 앞서나가던 자신의 충실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아! 가능하면 덜 다치게 해서 잡아와라! 멀쩡한 놈들이어야 고문하다 말도 못하고 죽어버리지 않으니까! 여기 이미 잡은 이 놈은…불안불안하거든.”
바닥에서 나뒹굴며 신음하는 사토고로를 기무라가 군홧발로 툭툭 쳤다. 그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사토고로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고, 입 안에 머금은 담배 연기를 사토고로의 얼굴에다 내뱉었다. 독한 연기를 뒤집어쓴 사토고로는 기침하며 괴로워했다.
“이봐. 나는 천황 폐하를 배신한 놈은 같은 황국 신민으로 취급 안 해. 은혜도 모르는,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지. 바로 너처럼 말이야. 또 귀찮게 했다가는 다리 하나로 안 끝나.”
경멸을 담아 말하며, 기무라는 권총을 꺼내 들고 사토고로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다음은…, 여기다.”
그는 피식 웃으며 총을 장전한 뒤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사토고로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기무라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들이받을 듯한 성난 황소와도 같았다.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는 사토고로가 여전히 굴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네가 죽어버려도 물어볼 놈은 많아. 이 야심한 밤에 산골짜기에서 도망쳐봤자 얼마 못 가서 다 잡히겠지. 산 놈이 적어도 10명가량은 있을 테니 충분하지 않겠어? 이 산골에 똘똘 뭉쳐서 우리 몰래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으려니, 얼마나 좋았을까? 어? 안 그러냐?”
기무라는 사토고로의 머리채를 거칠게 바닥에 내팽겨쳤다. 사토고로는 반항은 커녕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기무라는 일어서서 다시 사토고로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러니까 빨리 말해. 이 사진 속 남자가 어디로 갔는지. 이미 다 들통났어. 누군지 모른다고 발뺌해봤자 좋을 건 없을 거다. 알다시피, 난 기다리는 걸 잘 못해.”
다리에 총상을 입은 사토고로는 일어설 수 없었다. 아니, 일어서기는 커녕 몸을 일으켜 앉는 것조차 힘겨웠다. 계속되는 구타에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쪽 팔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린 데에 더해, 두 눈이 충혈되어 더더욱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가느다란 두 팔이 새벽바람에 의한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을 앞둔 공포 때문인지 심하게 떨렸다. 사토고로는 그 떨림이 추위에 의한 것이길 바랐다.
‘내 소리를 듣고 잘 도망쳤을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미안하네.’
사토고로는 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이기고 힙겹게, 하지만 의연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 그 바람에 풀과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 소란을 느낀 벌레들이 이리저리 도망치는 소리, 그리고 그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그의 동료들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소리. 몇 초 동안 집중한 사토고로는, 이내 안도한 채 숨을 깊게 내쉬었다. 병사들이 아직 다른 동료들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떨면서도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 기무라가 보였다. 악마와도 같은 형상을 한 기무라는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웃어? 당장 죽을 처지가 되니 실성을 했나? 시간은 이미 충분히 줬다. 하지만 나는 자비로우니까, 네게 추가시간을 주도록 하지. 5초. 5초 내로 대답하지 않으면, 네놈의 머리에 구멍이 뚫린다. 그럼, 5.”
기무라는 사토고로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초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할 생각 따윈 없는 사토고로에게는 그 짧은 시간도 무의미했다. 그는 대신 그 시간을 기도하는 데 쓰기로 했다. 부처님께, 신령들에게, 아니면 서역의 천주라도 좋으니, 동료들이 무사히 도망치게 해주기를. 그곳에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기를. 자신 앞에 있는 악마들에게 합당한 벌이 떨어지기를. 이윽고, 그의 눈 앞에 먼저 떠난 아들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드디어,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사토고로는 중얼거렸다.
“4, 3...”
초를 세던 기무라가, 죽음을 앞두고도 평온한 사토고로를 김이 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얌전히 죽겠다면 원하는대로 죽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기무라는 남은 시간을 세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안개가 뭉게구름처럼 감싼 산골 마을에,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계속
작가:Mesh
편집자: 한투한 번역기, 자퇴생
ㅡ천황 폐하의 은혜(유통기한 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