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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최고의 맛을 찾아서 -7화-

자퇴생 2026. 2. 4. 18:00

Episode 7. 유키노.





 “산속이라 그런지 많이 춥네요. 들어가서 주무시지 않으시고요.”
 

 어색한 침묵을 깨고 타케루가 말을 걸었다.

 
  “그러는 당신은 안 자고 왜 나온거죠? 이렇게 추운데 밖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유키노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타케루를 흘겨보며 차갑게 답했다. 그녀는 산골 추위에는 맞지 않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이런 날씨에 익숙한지 전혀 추운 기색이 없었다. 그녀의 쌀쌀맞은 반문에는 외부인인 타케루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음이 묻어났다.
 
  “이방인인 저를 쫓아내지 않고 재워주시는 것에 직접 감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 말에 유키노는 고개를 돌려 타케루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큰 키와 굵은 팔뚝이 그녀의 눈을 들어왔다.

 
  “키도 훤칠하고 아직 젊어 보이는 사람이 산속에서 길은 왜 잃어버려 가지곤…, 감사 인사는 여월이한테나 하세요. 여월이 아니었으면 무조건 내쫓았을 거였으니까.”

 
   타케루에게 더 할 말은 없었는지 유키노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깨가 많이 뭉쳤는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면서도 왼쪽 어깨를 연신 주물러댔다. 어깨를 두드리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타케루는 유키노가 쌀쌀맞은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문득 그는 그 느낌이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타케루는 그 사소한 직감을 놓치지 않았다.


"어깨가 많이 뭉치신것 같은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풀어드릴까요?"


"뭐라고...?"

그는 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타케루의 손길이 닿은 것을 느끼자 유키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하고 얘기도 안 해주실 것 같아서요. 확실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마님!”

 
  타케루가 넉살좋게 웃으면서 유키노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설령 아프지 않을까 염려하며 힘 조절도 신경 쓰면서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어깨는 돌이라도 박혀있는 듯 매우 단단했다. 그는 점점 힘을 주어 강도를 높였다. 처음에 유키노는 그의 손이 어깨에 닿자마자 뿌리치면서 거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케루의 자연스러운 넉살이 유키노의 올라가던 손을 다시 내려가게 했다. 다행히도 유키노는 타케루의 안마가 마음에 들었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흠, 손아귀 힘이 좋은데? 어디서 마사지라도 배워 왔나 봐?”

  “하하, 제가 이래 봬도 요리사여서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편입니다.”

 
  유키노는 ‘음, 그래?’라고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쌀쌀한 바람이 수풀 내음을 싣고 그들의 콧등을 간지럽혔다. 장막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밤의 어둠 사이로, 반짝이는 별빛과 달빛이 새어들어와 따뜻하게 그들을 감싸안는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조용한 밤을 산뜻하게 채운다.

 
  “유키노씨는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일본인이 ‘이런 일’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 말에 유키노가 잠깐 미간을 찌푸리더니,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런 일?, 여월이 그 애가 쓸데없는 말을 했나 보네.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유키노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무슨 사람인지는 알고 있어. 그날 당신 식당에서 여월이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어쩌다가 이 빌어먹을 나라가 싫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각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
 
  유키노가 손을 들어 이제 그만 주물러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타케루는 손을 거두고 그녀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어. 전쟁 때문에.”

  전쟁이란 말에 타케루는 움찔했다. 전쟁. 그가 가장 증오하는 단어이자, 듣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타케루는 유키노의 이어지는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높으신 분들은 축배를 들었겠지. 승전으로 힘을 증명했고, 일본이 드디어 열강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말이야. 정작 내 아들은 남의 나라 쳐들어가는 일에 억지로 끌려가서 죽었는데....”
 
  찬바람이 더욱 휘몰아쳤다. 이런 날씨가 이젠 익숙한 유키노는,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벌벌 떨던 타케루도 더이상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열을 느꼈다.


  “그 애가 군인을 하기 싫다고,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그렇게 말했을 때 우리가 그만 밀어붙여야 했어....”
 
  유키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베일 듯한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지고, 아이를 품에 안았던 따뜻한 시절을 추억하는 어머니의 눈을, 타케루는 보았다. 꽃잎 위 이슬처럼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유키노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촉촉해진 눈가에서 슬픔과 분노, 자책감이 함께 묻어나왔다.
 
  “.....그땐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
분명 명예로운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 거라고…..
다 거짓말이었지만.”

*(초창기 일본의 징병제는 필요 인력이 적어서 징병 대상 중 현역으로 입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과거 사회에서 늘상 그러했던 것처럼, 군입대는 명예롭고 남자다운 것으로 여겨졌고 출세하는 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유키노는 옷 소매로 눈물을 닦아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하의에 묻은 풀을 힘주어 털어내었다.
 
  “방금 한 말들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요.”
 
 원래의 쌀쌀한 말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타케루는 유키노의 아픈 과거를 억지로 말하게 한 것만 같아 어쩔 줄 몰라 했다. 유키노는 안절부절하는 타케루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만 들어갈게요. 밤이 깊었으니 당신도 슬슬 들어가요. 아침 일찍 가기 싫어도 우리가 억지로 내쫓을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키노는 달빛이 비추는 곳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계속




작가: Mesh
편집자: 한투한 번역기, 자퇴생


ㅡ편집자의 말

우리가 왜 죽었느냐고 누군가 묻거든
우리 아버지들에게 속아 이리 되었다 전하시오
-러디어드 키플링